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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영화 리뷰] 곡성 – 믿음과 의심, 인간 본성의 심연을 파고들다(영화 도입부부터 자체 평론 순으로)

by pearl0226 2025. 8. 4.

곡성 포스터
곡성 포스터

 

‘곡성(哭聲, The Wailing)’은 나홍진 감독이 선보인 독창적이고도 파격적인 미스터리 스릴러입니다. 전형적인 한국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초자연적 공포와 현실적인 비극, 그리고 종교적 상징까지 복합적으로 담아낸 이 작품은 국내외 평단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곡성’은 한 가정의 붕괴와 마을 전체를 덮친 정체불명의 재앙을 통해, 인간이 가진 두려움과 믿음,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를 집요하게 탐구합니다. 관객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쉽게 잠들 수 없는 불안과 수수께끼를 안고 극장을 나서게 됩니다.

작은 마을에 드리운 불길한 그림자

이야기는 곡성이라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시작됩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마을 곳곳에서 알 수 없는 광증과 잔혹한 살인 사건이 연이어 벌어집니다. 평범한 경찰 종구(곽도원 분)는 초기에 단순한 중독이나 질병의 결과라 여기며 수사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사건이 계속되면서, 마을 사람들은 원인을 일본인(쿠니무라 준 분)이라는 낯선 외지인의 출현과 연결 짓기 시작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불길한 기운, 알 수 없는 괴이한 흔적, 그리고 밤마다 들려오는 울음소리—시골 마을의 평온한 일상은 점점 공포와 불신의 늪으로 빠져듭니다.

종구의 딸 효진(김환희 분)마저 이상 행동을 보이자, 사건은 단순한 살인 사건에서 가족을 지키려는 한 남자의 처절한 사투로 확장됩니다. 외지인에 대한 집단적 두려움, 미신과 소문, 그리고 이방인에 대한 적개심이 뒤섞이며, 곡성 마을 전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에 점점 잠식됩니다.

믿음, 의심, 그리고 끝없는 혼돈

‘곡성’의 가장 큰 미덕은 단순히 귀신이나 악령의 공포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영화는 내내 ‘믿음과 의심’의 문제를 관객에게 던집니다. 종구는 점점 과학과 합리의 세계에서 멀어져, 무당 일광(황정민 분)과 같은 인물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천주교 신부가 등장해 구마의식이 시도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인 노인을 악마로, 또 다른 때는 피해자로 여깁니다. 이처럼 종구를 비롯한 모든 인물은 누구를 믿고, 무엇을 믿어야 할지 끝없이 흔들립니다.

관객 역시 인물들과 똑같이, 혹은 더 심하게 혼란에 빠집니다.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각 등장인물의 시선마다 다른 진실과 의심을 쏟아냅니다. 과연 악의 실체는 누구인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믿음의 대상을 정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영화는 불안을 끝까지 증폭시키며 관객을 놓아주지 않습니다.

특히 클라이맥스의 무당 굿 장면, 일본인 노인의 집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의식, 산속의 하얀 옷을 입은 여자(천우희 분)와의 만남 등, 종교적 상징과 미신, 심리적 압박이 극단으로 치닫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이성은 점점 무너지고, 모두가 무엇이 옳은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립니다.

선과 악의 경계, 그리고 인간의 본성

영화는 ‘선과 악’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초반부에는 분명해 보였던 악의 존재가 시간이 흐를수록 불투명해집니다. 일본인이 진짜 악마인지, 일광이 마을을 구원할 무당인지, 아니면 모두가 한순간에 악에 잠식된 것인지 명확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습니다. 영화 내내 시청자들은 각각의 인물과 사건에 대해 해석을 달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감독은 인간 내면에 도사린 두려움, 무지, 집단적 광기와 같은 본성적 약점을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믿음이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이 폭력으로 이어지며, 결국 마을 전체가 선과 악, 진실과 거짓,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무너집니다. 종구는 마지막까지도 가족을 구하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그의 믿음과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는 영화가 끝나도 남는 질문입니다.

곡성은 ‘악’이 단지 외부에서 온 존재만이 아니라, 인간 내부의 취약함과 집단 심리, 그리고 의심과 불신이 만들어내는 결과임을 암시합니다. 결국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큰 공포는, ‘무엇이 진짜 악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혼돈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연출과 연기, 압도적인 몰입감

나홍진 감독 특유의 예측불가한 전개와 생생한 현실감, 한국 시골 특유의 풍광을 섬뜩할 만큼 아름답게 담아낸 촬영, 그리고 절묘하게 어우러진 사운드와 음악이 곡성의 공포를 극대화합니다. 시골 마을의 평범한 풍경이 어느 순간 가장 무서운 공간으로 변모하고, 밤마다 들리는 비명과 굿판의 타악, 악령의 존재를 암시하는 기괴한 이미지들이 계속해서 불안감을 자극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모두 인상적입니다. 곽도원은 딸을 지키기 위해 점점 광기에 휘말리는 평범한 아버지의 심리를 리얼하게 그려내고, 쿠니무라 준은 섬뜩하면서도 연민이 느껴지는 이방인의 미스터리를 완벽하게 소화합니다. 황정민은 현실과 미신, 믿음과 조작의 경계에 선 무당 역으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천우희 역시 불가사의한 존재로서 영화의 미스터리를 더욱 깊게 만듭니다. 각각의 캐릭터가 모두 살아 움직이며, 누구 하나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인상을 남깁니다.

끝나지 않는 질문, 그리고 우리의 불안

‘곡성’은 단순한 공포영화를 넘어, 인간과 사회, 신념과 두려움, 선과 악의 본질을 묻는 거대한 질문을 남깁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들은 ‘누가 악이었는가?’,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누구를 믿었을까?’, ‘믿음이 인간에게 주는 위안과 위험은 무엇인가?’ 같은 의문을 오래도록 곱씹게 됩니다.

이 영화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안을 끝까지 남겨둔 채, 우리가 평소 믿고 있던 상식과 논리, 이성마저도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곡성의 공포는 미지의 존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요동치는 우리의 마음, 믿고 싶으면서도 두려워하는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영화가 남기는 깊은 여운과 불안, 그리고 질문들은 오랜 시간 관객의 마음을 흔듭니다. 곡성은 단순히 공포를 느끼는 작품이 아니라, 인간 본성과 사회의 심연을 함께 마주보게 하는 문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