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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영화 리뷰] 셰이프 오브 워터 – 경계 너머에서 피어난 사랑, 그리고 자유(그녀와 그의 만남부터 경계 없는 세계까지)

by pearl0226 2025. 8. 8.

셰이프 오브 워터 포스터
셰이프 오브 워터 포스터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특유의 환상과 현실이 맞물린 세계 속에서, 인간과 ‘다름’을 넘는 사랑을 그린 작품입니다. 1960년대 냉전시대의 미국이라는 역사적 배경 위에, 수조 속 괴생명체와 목소리를 잃은 여인의 관계를 동화처럼, 그러나 성숙한 시선으로 풀어낸 이 영화는 201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미술상, 음악상 등 4관왕을 차지했습니다.

겉으로는 ‘괴물과 인간의 사랑’이라는 기묘한 이야기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는 경계와 차별, 두려움과 이해, 지배와 해방이라는 주제를 고스란히 담은 은유입니다. 델 토로 감독은 판타지의 외피 속에 정치·사회적 긴장과 인간 내면의 갈망을 녹여, 사랑이란 어떤 형태로든 완벽히 자연스러운 것임을 보여줍니다.

목소리를 잃은 여인, 그리고 수조 속 그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정부 비밀 연구소에서 야간 청소원으로 일합니다. 어릴 적 상처로 말을 할 수 없지만, 규칙적인 일상과 소박한 취미 속에서 조용히 살아갑니다. 그런 그녀의 삶이 뒤집히는 순간은, 연구소에 ‘남미에서 포획된 정체불명의 수중 생명체’가 이송되면서 시작됩니다.

이 생명체는 ‘무기’로 연구되고, 심지어 해부 계획까지 세워집니다. 하지만 엘라이자는 매일 물 달걀과 음악으로 그와 교감하며, 말 없이도 통하는 깊은 연결을 만들어 갑니다. 손짓, 표정, 음악—그 어떤 언어보다 진실한 대화가 둘 사이를 메우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소통은 목소리가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냉전의 그림자와 연구소의 잔혹한 현실

1960년대 미국은 냉전 한가운데 있었고, 군사기밀과 과학 기술이 국가 안보의 핵심이었습니다. 연구소 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이 생명체를 단순히 ‘적국보다 먼저 해부해야 할 자산’으로 취급합니다. 폭력과 전기 충격, 사슬로 억압하는 장면은 냉전시대의 불신과 잔혹함을 그대로 투영합니다.

이와 동시에, 소비에트 스파이인 호프스테틀러(마이클 스털버그) 역시 그를 정치적 거래 대상으로 봅니다. 영화 속 정치·군사적 음모는 ‘다름’을 이해하기보다 이용하려는 인간의 본능과 맞닿아 있습니다. 델 토로 감독은 이 구조를 통해, 사랑과 이해가 얼마나 취약하고, 권력과 두려움이 얼마나 빠르게 파괴를 불러오는지를 대비시킵니다.

도망과 해방 – 경계를 넘어서는 사랑

엘라이자는 연구소의 잔혹한 계획을 알게 된 후, 과감히 그를 구출하기로 결심합니다. 친구이자 이웃인 화가 자일스(리처드 젠킨스)와 동료 젤다(옥타비아 스펜서)의 도움을 받아,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마침내 그를 아파트 욕조로 데려옵니다.

숨죽인 일상 속에서, 둘은 물을 매개로 더욱 깊이 연결됩니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단순한 연민을 넘어선 ‘사랑’의 완전한 형태를 보여줍니다. 종과 언어, 심지어 세계관이 달라도,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랑 말입니다. 그러나 연구소와 정부는 그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추격은 거세지고, 숨겨진 시간은 점점 줄어듭니다.

절정 – 물속에서 완성된 약속

결국 스트릭랜드는 엘라이자와 생명체를 추적해 포위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상상치 못한 반격을 당하고, 물속에서 벌어진 결말은 관객에게 ‘해피엔딩인가, 아니면 또 다른 세계로의 이별인가’라는 해석을 남깁니다.

엘라이자가 마지막 순간 물속에서 숨을 쉬게 되는 장면은, 마치 그녀가 원래부터 그 세계의 존재였음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델 토로 감독은 명확한 설명 대신, 시적이고 몽환적인 여운을 남겨, 사랑이란 구체적 정의가 아니라 ‘형태 없는 물’처럼 자유롭고 확장된다는 주제를 관객 스스로 곱씹게 합니다.

시각과 음악의 마법 – 델 토로의 손끝

‘셰이프 오브 워터’의 또 다른 주인공은 미장센과 음악입니다. 에메랄드빛 물결, 1960년대 가전과 가구의 디테일, 실험실의 차가움과 욕실의 따뜻함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시각적 서사를 완성합니다.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은 물처럼 부드럽게 흐르며, 사랑과 긴장,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전달합니다.

델 토로 감독은 특수분장과 아날로그 감각을 살려 생명체를 구현했고, 그를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감정과 존엄을 가진 존재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괴물’에 대한 전통적인 시선을 거부하고, 관객이 그를 인간과 같은 대상으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합니다.

사랑, 자유, 그리고 경계 없는 세계

‘셰이프 오브 워터’는 단순히 판타지 로맨스가 아니라, 차별과 억압의 시대에 ‘다름’을 지키는 용기와 해방의 서사입니다. 엘라이자와 그가 서로를 구하는 과정은, 사회가 정한 경계와 규칙을 깨뜨리는 사랑의 힘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사랑의 형태는 물과 같다’는 메시지를 품습니다. 물이 그릇에 따라 형태를 바꾸듯, 사랑도 사람과 사람, 존재와 존재 사이에서 무한히 변주됩니다. 경계와 차별을 넘어선 사랑은 결국 모두를 자유롭게 만든다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실을 델 토로는 환상적인 방식으로 전합니다.

이 작품은 눈과 귀를 매혹시키는 미학 속에서, 관객에게도 묻습니다. “당신은 얼마나 다른 존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 답은 마치 물처럼 각자의 마음속에서만 완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