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타임(About Time, 2013)’은 단순한 로맨스 영화의 껍데기를 쓰고 있지만, 안을 열어보면 인생 전체를 담은 보석 같은 작품입니다.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따뜻하고 위트 있는 연출, 감정을 서서히 끌어올리는 대사, 그리고 돔놀 글리슨·레이첼 맥아담스·빌 나이의 완벽한 호흡이 어우러져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이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과 더 오래 있고 싶다”라는 인간의 가장 순수한 바람을, ‘시간 여행’이라는 매개로 아름답게 풀어냅니다. 개봉 당시에는 ‘올해의 힐링 영화’라는 별칭을 얻었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재관람하는 팬이 많을 만큼 변치 않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시간 여행의 비밀, 인생의 새로운 시작
이야기는 주인공 팀(돔놀 글리슨)이 21세 생일에 아버지(빌 나이)로부터 가문의 비밀을 듣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집안의 남자들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죠. 단,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건 자신이 살았던 순간에 한정됩니다. 팀은 이 능력을 활용해 더 나은 인생을 살아보려 합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실수를 고치거나, 부끄러웠던 순간을 없애는 데 쓰지만, 곧 연애라는 ‘최대 난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합니다. 런던에서 만난 메리(레이첼 맥아담스)에게 완벽한 첫인상을 남기기 위해, 그는 같은 날을 여러 번 반복하며 대화와 분위기를 조금씩 다듬어갑니다. 이 장면들은 코믹하면서도 사랑에 서툰 청년의 진심이 묻어나 웃음을 자아냅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한 무한 반복
팀은 메리와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수없이 시간을 되돌립니다. 데이트 약속이 엇갈리면 하루를 다시 시작하고, 사소한 오해가 생기면 그 순간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시간 여행’이 모든 걸 완벽하게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드러냅니다. 특히 결혼 준비 과정과 육아 시기에는 예기치 못한 변수들이 등장합니다. 아무리 과거로 돌아가도 아이의 성별이 바뀌는 ‘나비효과’처럼, 어떤 변화는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판타지의 달콤함 대신, 인생의 불완전성을 보여주며 현실적인 깊이를 더합니다.
아버지와의 시간 – 가장 값진 순간
영화의 가장 뭉클한 축은 팀과 아버지의 관계입니다. 아버지가 시한부 판정을 받았을 때, 팀은 과거로 돌아가 함께 바닷가를 거닐고, 탁구를 치며 시간을 조금 더 연장합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깨닫습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야말로 삶의 불가피한 일부라는 것을요. 이 장면들은 ‘시간 여행’의 판타지 속에서도, 우리가 결코 바꿀 수 없는 현실의 무게를 담담히 보여줍니다. 아버지가 팀에게 남긴 조언—“매일을 두 번 살아봐라. 한 번은 그냥 살고, 한 번은 모든 순간을 느끼면서 살아라”—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이자, 관객의 마음에 오래 남는 문장입니다.
완벽한 하루란 무엇인가
아버지의 조언을 따른 팀은 매일을 두 번 살아보며 변화된 일상을 경험합니다. 첫 번째 하루에서는 무심히 지나쳤던 작은 친절과 웃음이, 두 번째 하루에서는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러다 그는 결국 ‘두 번 사는 것’조차 내려놓고, 처음부터 하루를 마지막처럼 살기로 합니다. 이 결심은 ‘시간 여행’이란 도구를 버린 대신, 매 순간에 더 집중하는 삶으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영화는 이렇게 판타지를 벗기고, 남은 자리에 현실의 온기와 사랑을 남깁니다.
사랑, 가족,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어바웃 타임’은 처음에는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생 영화로 확장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가정을 이루고, 부모와의 이별을 겪으며 팀은 성장합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고 있나요?” 단순히 시간을 오래 갖는 것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죠. 메리와의 웃음, 아이들과의 시간, 부모님과의 대화—이런 평범해 보이는 순간들이야말로 진짜 보물임을 영화는 강조합니다.
마무리 – 우리 모두의 시간 여행
‘어바웃 타임’은 시간 여행이라는 판타지를 통해 현실의 소중함을 재발견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팀이 능력을 쓰지 않기로 한 결심은, 우리가 이미 가진 시간과 사람들을 더 사랑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하루의 풍경을 다르게 바라보게 됩니다. 버스에서 마주친 미소, 저녁 식탁에서의 대화, 창밖으로 들어오는 빛—이 모든 것이 다시는 오지 않을 ‘한 번뿐인 순간’임을 알게 되니까요. 결국 ‘어바웃 타임’이 전하는 건 거창한 로맨스가 아니라, 매일을 사랑하는 법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시간 여행입니다.